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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등반

2015년 하계 휴가.
휴가 내자마자 신규 프로젝트 시작되서 결제난 걸 안갈 수도 없고,
집에만 있자니 집에 있을꺼면 출근하라고 할 것 같고, 혼자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서 혼자만 갈 수 밖에 없는 곳을 생각해 보다가 한라산 등반을 결정했다.
이왕 가는거 백록담 찍고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코스 공부를 했고 성판악으로 올라가서 관음사로 내려오고 싶었지만,
현재 관음사 코스는 정상 등반이 불가능하여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는 성판악 코스가 유일하다는...
경치는 관음사 코스가 좋다던데...

 

등반하는 날짜의 제주도 날씨는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성판악 코스는 비가 와도 등반이 가능하다는 글들을 보고 힘을 내어 등반 계획을 강행했다.
등반 전날 저녁 제주도에 도착해서 렌트하고 이른 아침의 여정을 위해 숙면을 취했다.
기상해서 보니 예정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50cc짜리 스쿠터와 우비로 빗속을 가로지르며 성판악 입구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초코바 한개와 이온음료를 사들고 백팩1개와 클로스백1개를 짊어지고 우비를 재정비 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 시작 시간은 오전 8시.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등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외국인도 꽤 있었고, 등산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 보다는 나처럼 간편한 차림이 더 많았다.
등반에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빠른 걸음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한 30분쯤 지날 때부터 내 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됐고 속밭샘을 지나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내 다리는 내 다리가 아닌 듯 했다. 그냥 이제 마지막 코스라는 생각 만으로 버텼다.
잦은 폭우로 많은 등산객들이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남양주 날다람쥐는 빨리 정상 찍고 내려가겠다는 생각에 쉬지도 않았다.
그 곳에서 정상까지의 오르막은 진짜 빡쎘다. 중간중간 사진 찍느라 머뭇거린게 그나마 다리에 충전이 됐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바람은 훨씬 더 거세졌고, 비를 그나마 가려주던 나무도 사라져갔다.
구상나무가 맞는지 죽은건지 산건지 모를 나무들이 난간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쯤을 올라가 정상을 마주했고, 백록담은 안개에 가려 힌 사슴도 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내 예상에 없던 내용인데... 나중에 또 와야 하는건가 ㅜㅜ
이 한라산 정상의 기운을 받아 가족들한테 영상 편지라도 찍고 싶었는데 비바람에 핸드폰 고장날까봐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땀도 식고 거센 바람에 너무 추워서 인증샷만 찍고 후다닥 내려왔다.
얼마나 후다닥 내려왔냐면... 하산 시간은 2시간 20분 걸렸다. 등산 시간은 2시간 40분.
딱 5시간 걸렸다.
등산 이렇게 하는거 아닌데...
등산을 즐기는게 아니라 운동하고 온 느낌...;
한라산 홈페이지에 보면 성판악 코스는 정상까지 9.6km 이고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다. ㅋㅋ
내려오는 길에 사라오름 전망대에 잠깐 들리려고 했는데, 역시나 안개만 보일꺼 같아 패스했다...

 

한 10년만인가... 등산 소감을 써보자면,
허벅지 운동만 하고 종아리 운동을 등한시 한 벌을 받은 느낌이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쉽다는 말이 과연 등산에도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록담을 위해 삼고초려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음 한 켠으로는 여기 왜 왔나 하는 생각도 간혹 들었으니 말이다.
성판악 코스는 그래도 일반인이 등반할 수 있도록 길이 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비 때문에 돌맹이들이 미끄러워서 발목에 무리가 많이 오긴 했다.
나름 튼튼한 조단을 꽉 조여매고 갔는데도 등반 얼마 후 밑창이 밥달라고 입을 벌리더니 하산길에 결국 입이 찢어지고 말았다.
햇볕이 따가워서 헉헉 대는 것 보다는 시원하게 비가 내려 준 것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오를 때는 백록담을 본다는 부푼 마음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올라갔고, 내려올 때는 정말 아무 재미없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이 더 길게 느껴졌다.

 

주차장에 다시 돌아왔을 때의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일정이 일찍 끝난 바람에 관음사 구경까지 마저 하고 왔다.
뿌듯하긴 했지만, 혼자서 1박 이상의 여행은 지양하기로 결심했다.
타지에서의 밤은 너무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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